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B급 영화는 저예산입니다. 그만큼 만듦새의 측면, 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이래저래 단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신 주류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센스와 신선함, 그리고 떨어지는 만듦새가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지게 만든 연출 등으로 이 약점을 커버할 때 우리는 그걸 '좋은 B급 영화' 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한데요. 확실히 B급 영화 제작자 대부분이 이런 '좋은 B급 영화' 를 시도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좋은 시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69년 작 '드라큘라 성의 피'(Blood of Dracula's Castle)이 좋은 예인데요.
줄거리는 드라큘라가 그의 부인과 현대(1960년대)까지 살아남으면서 시작됩니다. 드라큘라와 부인은 한 오래된 성의 세입자로 살면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여러 여성들을 감금해 피를 뽑아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의 건물주가 사망하고 그 조카가 새로운 건물주가 되어 성으로 오게 됩니다. 드라큘라와 부인은 새 건물주에게도 계속 세입자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지만, 새 건물주는 그의 애인과 함께 자신이 직접 성에서 실거주를 하겠다면서 드라큘라와 부인, 부하들에게 퇴거 요청을 합니다. 결국 이 임대차 분쟁은 드라큘라와 인간의 대결로 치닫는데....
스토리
현대까지 살아남은 드라큘라라는 설정이 드문 건 아닙니다만, 본작의 스토리는 꽤 참신합니다. 그냥 현대까지 살아남은 드라큘라 이야기라는 설정에서 그치지 않고, 세입자로 살아가는 드라큘라와 새 건물주가 된 인간과의 분쟁이라는 스토리까지 끄집어 내어, 판 자체는 꽤 그럴듯하게 깔았거든요.
안타깝게도 괜찮은 건 거기까지입니다. 세입자 드라큘라 부부와 건물주 인간이라는 판 자체는 흥미롭되, 그걸 풀어나가는 솜씨가 한심합니다. 꽤나 현실적인 설정인 것 치고는 스토리가 말이 되지 않고, 그나마 스토리 자체의 밀도도 옅은 편입니다. 게다가 재미도 없지요. 드라큘라 부부가 자기들 정체를 숨기려고 애쓴다거나, 새 건물주가 드라큘라 부부의 정체를 의심하고, 마침내 정체를 밝혀내는 장면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등 재미가 될 만한 부분들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렇다 보니 기본 설정만 좋을 뿐, 전반적으로 스토리가 무척 부실합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처럼, 잘 해야 30분 짜리를 만들 수 있는 스토리만 가지고 1시간 20분으로 늘리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캐릭터
캐릭터는 설정만으로는 꽤 흥미로운 편입니다. 먼저 드라큘라 부부는 무자비한 살인마라기 보다는 적당히 불멸을 누리고 즐기면서, 현대 사회에서 적응하고 싶어 하는 소시민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감금하고 죽이지만, 과학이 더 발전해 인공 혈액이 나오면 사람도 안 죽이고 완전히 법 잘 지키며 사회에 적응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은 것으로 나오지요. 다만 역시 캐릭터 설정만 좋고, 그 캐릭터가 작중에 하는 행동은 한심합니다. 행동력도 능력도 지혜도 없는 무능한 캐릭터들이라 매력까지 떨어집니다. 어느 정도의 행동력, 능력, 지혜 등이 받쳐줬다면 꽤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드라큘라의 부하들도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교수형을 당할 뻔 했다가 드라큘라 부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그들의 충복이 된 집사. 신사적으로 보이지만 사이코패스인 늑대인간. 저능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악당 등 저마다 개성도 있고 설정도 괜찮은데, 정작 작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능하거나, 멍청하거나, 행동력이 없지요.
드라큘라 부부와 대립하는 인간들은.... 딱히 할 말이 없군요. 그냥 멍청한 남자와 무력하게 곤경에 처해지는 여자들 딱 그 수준입니다.
연출
좋지 못합니다. B급 영화임을 고려해도 상당히 나쁜데요. 뭔가 제대로 화면을 뽑아내고 싶다는 노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냥 대충 그럴듯한 배경에서, 배우들이 적당히 연기하는 거 카메라로 잡으면 끝' 이라고 생각한 게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이 되는데요. 정말로, 정말로 무성의하게 찍었다는 느낌이 팍팍 전달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리뷰한 영화 통틀어 '가장 무성의하게 찍은 것으로 의심되는 영화' 1순위 입니다.
총평
나쁜 영화입니다. 판은 꽤 흥미롭게 깔았는데, 그 판 위에서 결과물을 이런 식으로 밖에 내놓지 못했다면,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하기가 어렵네요. 스토리나 캐릭터는 흥미로울 수 있었음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고, 연출은 제가 본 B급 영화 중에서도 거의 바닥급으로 나쁩니다. 어떻게 봐도 '배경 설정이 괜찮다' 외에는 장점을 찾기 어려운, 나쁜 영화입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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