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요절복통 로봇 살인마 파티! 영화 '킬보트'

B급천국 2024. 6. 1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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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의 거물 짐 위노스키 감독의 1986년작 킬보트(원제 Chopping mall)는 슬래셔 영화(살인마가 희생자를 살해하는 영화)의 역사에서도 의외로 흔치 않은 '로봇 살인마' 영화입니다. 마스크나 인형탈을 쓴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로봇이 사람을 죽이는 쪽이 훨씬 연출하기가 어렵기에 저예산을 미덕으로 삼는 대부분의 슬래셔 영화에서는 상상은 해도, 현실로 구현하기는 어려웠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CG 떡칠이 존재할 수 없는 1980년대에, 어설픈 안드로이드 따위가 아닌 깡통 로봇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존재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무대가 되는 쇼핑몰은 1980년대에 AI 기술을 동원하여, 로봇을 활용한 무인 경비 시스템을 구축한 시대를 앞선 곳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상악화로 쇼핑몰에 벼락이 치고, 이 벼락은 쇼핑몰에 연결된 컴퓨터 시스템을 고장냅니다. 결국 이전까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경비 로봇'이 폭주하여 '살인마 로봇'으로 변하여 쇼핑몰에 남아있던 직원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하는데.....

 

 

 

 

스토리 

 

 

킬보트의 설정은 단순명료합니다. 번개가 쳐서 컴퓨터가 고장나고, 컴퓨터가 조종하던 인공지능이 망가져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고, 이에 사람들은 로봇에 맞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슬래셔 영화가 단순명료한 설정마저도 제대로 풀지 못해 스토리가 엉망진창이 되는 일이 왕왕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수준은 아닙니다. 누구나 상상할 순 있지만 막상 작품으로 만든 케이스가 의외로 드문 살인마 로보트라는 설정은 그럭저럭 잘 풀었습니다.

 

스토리의 질은 보통입니다. 일단 기승전결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떻게 영화가 시작되고, 사건이 진행되며,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가 기본적인 얼개는 그럭저럭 맞습니다. 다만 세부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면 이 장르의 고질적 문제인 '머리를 비우고 보는데도 짜증나거나 개연성 문제가 보이는' 현상은 있습니다. 슬래셔 영화 피해자들이 멍청한 거야 하루이틀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지요. 전반적으로 스토리의 질과 스토리텔링은 장르 기준으로 보통은 되지만, 뛰어나지는 못한 수준입니다.

 

 

 

연출

 

 

연출은 나쁘지 않습니다. 슬래셔 영화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살인마의 존재감과 살인 및 액션씬을 잘 묘사하는 것인데요. 살인마인 로보트들의 비쥬얼도 나쁘지 않고, 존재감도 확실합니다. 시대가 시대인데다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기대할 수 없는 영화라 지금 보면 어느 정도 싼티가 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저렴한 CG로 대충 만든 크리처 등보다는 훨씬 나은 '진짜 깡통'의 존재감을 확연히 보여줍니다. 

 

로봇 살인마와 인간의 대립도 나쁘지 않습니다. 총에 맞아도 끄떡없는 무적의 로봇의 공격을 막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인간들의 눈물겨운 분투도 꽤 나쁘지 않게 뽑혔습니다. '훌륭한' 수준은 아니지만, '괜찮은' 수준은 됩니다. 여기에 다소 뜬금없이 튀어나와 잔혹함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놀라게 하는 고어씬 등도 꽤 적절하게 들어간 편입니다. 

 

 

캐릭터

 

캐릭터는 좋지 못합니다. 살인마 로봇의 괜찮은 존재감에 만족스러워 하다 포커스가 인간으로 넘어가는 순간, 하강이 시작됩니다. 슬래셔 영화의 캐릭터가 멍청한 거야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멍청한 인간들 속에서 빛나는 캐릭터들이 있어야 합니다. 멍청한 캐릭터 투성이지만 그 속에서 '토미'라는 명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의 캐릭터성을 끌어올린 13일의 금요알 4편이나 6편, 멍청이들 속에서 역대 최고의 파이날 걸(공포 영화 속 마지막 여성 생존자)을 등장시킨 Sorority babes in the slimeball Bowl-O-Rama(1988)같은 영화와는 비교하는 것조차 황송합니다. 

 

특히 심각한 건, 파이날 걸 역할을 맡은 여주인공이 역대급으로 매력이 없고 멍청하다는 겁니다. 외모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가 하는 행동부터 개연성이 부족하고, 까놓고 말해 멍청하며, B급 슬래셔 영화 기준으로도 연기력까지 좋지 못합니다. 워낙 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살인마와 여주인공이 대결하는 데 그냥 살인마가 여주인공 죽이고 끝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살인마가 주인공인 이 장르에서도 좋은 현상은 아니지요. 여주인공도 심각하지만, 그 외 캐릭터들도 좋지 못합니다. 소위 '평타' 급이라도 되는 캐릭터도 하나도 없을 정도이니까요.

 

 

총평

 

킬보트는 B급 슬래셔 영화로서,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제가 본 짐 위노스키 감독 영화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작품입니다. 문제는 종합해 보면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은 평작' 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지요. 장점도 있고 미덕도 있지만, 인간 캐릭터가 정말 심각하게 나쁘다는 단점도 크지요. 

 

종합하면, 이 요절보통 로봇 살인마 파티 영화 킬보트는 취향에 맞는다면, 괜찮게 볼 수 있는 영화일 겁니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잘 만들었다면 '좋은 영화' 까지도 갔을 텐데,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게 아쉽군요.

 

 

평점 ★★★ (별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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