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노틀담의 꼽추와 프랑켄슈타인의 만남, 영화 '영안실의 꼽추'

B급천국 2024. 6. 1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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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의 꼽추와 프랑켄슈타인을 주 재료로 하고, 거기에 광기와 크툴루 신화를 한 스푼 섞으면 뭐가 나올까요? 바로 '영안실의 꼽추'(Hunchback Of The Morgue)가 나옵니다. 1973년에 나온 이 스페인 영화는 당시 기준으로 보나 지금 보나 꽤 강렬한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그리고 파국적인 결말이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물론 스토리와 캐릭터가 강하다고 다 좋은 영화인 건 결코 아니겠지요. 과연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요?

 

이 영화는 영안실에서 일하는 꼽추 '볼프강 고토'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고토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세지만, 꼽추라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슬픈 존재입니다. 그런 고토의 유일한 삶의 위안은 고토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한 병든 소녀인데요. 하지만 그 소녀가 병으로 사망하고, 영안실에서 관리인이 소녀의 시신을 모욕하는 것을 본 고토는 폭주하여 관리인을 살해합니다. 때마침 죽은 자의 시신을 이용해 온갖 실험을 자행하던 매드 사이언티스트 프레드릭 박사가 고토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일을 도와주면 죽은 소녀를 되살려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에 고토는 프레데릭의 실험에 협조하며, 실험에 필요한 시체를 얻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스토리

 

 

노틀담의 꼽추에 프랑켄슈타인, 여기에 광기 한 스푼. 마지막으로 크툴루 신화 향료 약간.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잘 요리하지 못하면 끔찍한 결과물이 나오기 십상인 레시피인데요. 이 영화에서는 이 까다로운 레시피를 상당히 잘 활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까지 튀는 재료들을 대거 활용하여 만들었음에도 기승전결의 흐름에 크게 흠잡을 데 없다는 건 상당히 높이 쳐 줄 만한 부분입니다. 파국에 이르는 결말 부분의 개연성이 좀 약한 느낌입니다만, 아주 나쁘다거나 영화의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스토리가 잘 뒷받침해 주는 것도 장점입니다. 캐릭터만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 각각의 동기와 행동을 뒷받침해 주는 기반을 잘 받쳐주고, 그 기반 위에서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난장판을 마음껏 펼치게 도와주지요. 앞서 말 한 대로 개연성 문제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냐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호평하면 호평했지, 혹평할 정도의 스토리나 각본은 아닙니다.

 

 

캐릭터 

 

 

주요 캐릭터는 꼽추 고토와, 매드 사이언티스트 프레드릭입니다. 고토를 노틀담의 꼽추의 '콰지모도', 프레드릭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치환하면 정확한데요. 물론 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천사표였던 콰지모도와는 달리 고토는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소녀가 죽은 후 프레드릭이 개입하기 전부터 이미 살인을 저지르며 폭주를 하기 시작하는 등, '사정은 이해하지만 빌런' 인 캐릭터에 속합니다. 프레드릭은 일반적인 프랑켄슈타인 박사 캐릭터보다도 훨씬 사악한,  동정의 여지도 없는 미친 천재이지요. 두 주역 캐릭터가 뚜렷한 포지션과 특징을 점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펼칩니다. 배우들의 연기나 비주얼도 괜찮고요. 특히 고토 역할을 맡은 배우 '폴 내시'는 '스페인의 론 체니'라 불릴 만큼 스페인 호러의 전설로 꼽히며, '더 행잉 우먼'  등에서도 열연하였습니다. 

 

캐릭터 관계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고토가 콰지모도(노틀담의 꼽추)라면, 프레드릭이 프롤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레드릭은 그보다 영악합니다. 마지막 파국에 이르기 전까지 프레드릭은 고토를 육체적으로 학대하지 않고, 함부로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퍼붓지도 않습니다. 그저 교묘하게 고토를 가스라이팅하며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고, 이에 넘어간 고토는 이미 살인을 저지른 시점에서 더욱 폭주하여, 말 그대로 살인마가 되어버리지요. 자신과 프레드릭 모두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인지해도 살인을 멈추지 않는 고토, 은연중에 고토의 위험성을 깨달으면서도 자신의 야망에 빠져 이를 애써 무시하고 실험을 계속하는 프레드릭의 조화는 작품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조연들도 제 몫은 다 하면서 작품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지요.

 

 

연출

 

 

연출도 보통 이상입니다. 이런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비주얼은 충족시켜 주는데요. 특히 잊혀진 지하 던전을 배경으로 하여 감옥, 실험실 등이 갖추어 진 가운데 그 장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화면은 충족시켜 줍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에 비해 피가 덜 나오는 건 다소 아쉽습니다만 그거 때문에 영화 수준이 떨어졌다고 혹평할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 또한, 가끔 터뜨려야 할 때는 적재적소에 터뜨려 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많이 꼽는 '쥐들의 습격' 장면이 좋은 예입니다.

 

 

총평

 

좋은 영화입니다. 노틀담의 꼽추에 프랑켄슈타인을 섞어 광기 한 스푼, 크툴루 신화 양념을 더해 영화를 만든다는 게 말이 쉽지, 제대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인데도 그 어려운 일을 해냈지요. 그것도 그냥 해냈다 수준을 넘어, 상당히 잘 해냈습니다. 공포영화를 싫어하지 않으며, 20세기 중후반 유럽 공포영화 특유의 색감이나 연출, 스토리텔링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쯤은 볼 만한 영화입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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