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늙은 인종차별주의자 흡혈귀의 모험, 영화 '올드 드라큘라'

B급천국 2024. 6. 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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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 아니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 드라큘라만큼 오랫동안 인기를 끈 캐릭터도 없을 겁니다. 그만큼 숱한 영화가 만들어졌고, 재해석도 끝없이 이루어졌으며, 멀쩡한(?) 드라큘라 영화가 아닌 패러디나 코미디의 소재로도 끝없이 재탄생되었습니다. 이 1974년 작 올드 드라큘라(OLD DRACULA)도 드라큘라의 일종의 패러디 코미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큘라 패러디나 코미디야 별처럼 많습니다만, 이 작품은 '인종차별주의자 드라큘라' 라는 요상한 설정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이 현대(1970년대)까지 살아남았고,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인 줄 알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늙었으며, 지금은 유령 나올 것 같은 성에서 외로운 귀족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에 적응해서 자신의 성을 관광지로 개조하여 관광객들도 받고, 겸사겸사 관광객들 피를 빨아 배도 채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의 목적은 자신의 부인 뱀피라를 부활시키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아름다운 여성 몇 명의 피를 추출해 뱀피라에게 수혈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실수로 의도했던 대로 백인의 피를 수혈하는 게 아니라 흑인의 피를 수혈하고, 그 때문에 백인이었던 뱀피라는 흑인 여성으로 부활해 버립니다. 뱀피라는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없다고 합니다만, 드라큘라 백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흑인이 된 걸 용납 못 하고 백인으로 되돌리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스토리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긍정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드라큘라 백작의 마인드는 작중에서도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결말에는 나름대로 본인의 인종차별 마인드에 대한 업보(?)도 받으니 말입니다. 물론 인종차별 주인공을 등장시켜 진지한 고찰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인종차별을 소재로 유머로 소비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니까 가능했지, 지금은 이런 영화를 만들기 어렵겠지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미묘합니다. 초반은 훌륭합니다. 즉 드라큘라가 현대까지 살아남았고, 이제는 자신의 성에 관광객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으며, 그 와중에 흡혈 하며 식사도 하고, 사고로 다른 흡혈귀가 생기면 개체 조절을 위해 그 흡혈귀를 안락사 시키기도 합니다. 인간을 노예로 삼는다느니 세계를 정복한다느니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름대로 현대 사회에 잘 적응한 드라큘라의 삶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무조건 착한 인본주의자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을 잡아먹을 땐 먹더라도 어쨌든 인간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흡혈귀의 삶을 잘 묘사했지요.

 

문제는 이 영화의 본편이라 할 수 있는 부분, 즉 수혈 사고로 드라큘라 부인 뱀피라가 흑인으로 부활하고, 이에 드라큘라와 뱀피라가 런던으로 가 모험을 간 이후로는, 흥미가 팍 떨어진다는 겁니다. 화려한 액션, 재치있는 대사, 흥미로운 스토리 등 제대로 펼쳐지는 게 없습니다. 결말은 실소가 나올 정도이지요. 초반만 따지면 별 넷은 줄 만 합니다만, 그 이후 스토리가 사정없이 무너지는 안타까운 케이스입니다.

 

 

캐릭터

 

 

주인공인 드라큘라는 괜찮습니다. 늙은 신사 흡혈귀를 연기하는 배우 연기도 좋은 편이고, 나이들어 좀 삶에 지쳤지만, 여전히 부인을 사랑하고 부활시키려 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려 하는 등 동기도 뚜렷합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좋으나, 이를 뒷받침해 줘야 할 스토리가 좋지 못하여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초반에 날아다니던 캐릭터가, 중반 이후로는 그저 그런 꽁트물 속 흡혈귀 정도로 전락하는 게 아쉽습니다.

 

드라큘라 이외의 캐릭터는 평이합니다. 뱀피라는 그냥 남편을 사랑하긴 하지만 꼰대질은 이해 못하는 부인이고, 아군과 적군 모두 최소한의 역할만을 합니다. 드라큘라 이외에 눈에 띄거나 기억이 남는 캐릭터는 없네요.

 

 

연출

 

드라큘라가 실수로 만든 흡혈귀를 안락사 시키는 장면

 

연출도 영화 스토리를 따라갑니다. 연출이 가장 좋은 건 초반입니다. 늙은 드라큘라가 성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관광지로 만들고, 관광객들을 위해 무대장치를 동원하여 호러쇼를 보여주고 드라큘라 음악을 연출해 주며, 그 과정에서 배를 채우고 실수로 발생한 흡혈귀를 안락사 시켜 처리하는 등 이 시기(1970)년대에는 딱히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을 것 같은 설정을 영상으로 잘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초반이 지나면, 눈에 띄는 연출이 없다시피 합니다. 딱 하나 괜찮았던 장면이 드라큘라 백작이 위험에 빠진 인간 여성을 구해주고, 수백년의 삶에 지친 모습을 언뜻 보여준 장면인데요. 하지만 딱 한 장면 연출 잘 했다고 연출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여러모로 초반만 좋은 영화의 전형이라 하겠습니다.

 

 

총평

 

올드 드라큘라가 초반의 폼을 후반까지 유지했다면, 최소 별 넷이나 그 이상도 줄 수 있는 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 하였고,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밟히는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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