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그 외 매체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 있습니다. 소재, 스토리, 그림체 등등 여러 의미로 다양성이 풍부하지요. 다양성=좋은 작품인 건 절대로 아닙니다만, 다양한 취향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양한 작품들 중 나에게 맞는 작품을 찾는 건 쉽지 않지만요.
2023년에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캡틴 폴(CAPTAIN FALL)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준으로도 독특한 작품입니다. 찌질한 주인공의 애환을 다루는 일명 '루저물'과 '빌런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의 조합은 어떤 장르에서든 그렇게 흔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둘 중 하나라면 흔하지만, 둘을 조화시킨 작품은 찾기 가 쉽지 않지요.
줄거리는 착하지만 무능하고, 가정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하진 않았지만 정서적 학대를 당하며 여러모로 불쌍하게 된 주인공 '조나선 폴'이 유람선 선장이 되면서 시작됩니다. 본래라면 선장은 커녕 유람선 취업도 불가능한 스펙의 그이지만, 무능한 선장을 얼굴마담으로 세운 후 그 여객선에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려는 빌런 집단이 그를 선장으로 고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와중에 조나선은 빌런 집단의 일원인 '리자 배럴'과 묘한 관계가 되는데.....
스토리
캡틴 폴의 스토리는 한 가지 아주 큰 단점만 제외하면, 괜찮습니다. 일단 작품의 큰 줄기가 되는 주인공 조나선이 자기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지만, 그 와중에 스스로 성장(혹은 성장한다고 믿는)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조나선과 리자의 복잡미묘하면서 은근하게 호감을 쌓아나가는 스토리. 적대자(이자 일단은 정의의 편)인 에이전트 스틸의 스토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넷플릭스 성인 애니메이션 특유의 필요 이상이라 느껴지는 지나칠 정도의 섹드립, 적대자인 스틸 쪽의 스토리가 다소 지루한 대목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스토리에는 아주아주 큰 단점이 있는데요. 시즌 1 분량도 제대로 마무리 못 지었고, 마무리 지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는 겁니다. 자세한 건 총평에서 설명하지요.
캐릭터
캐릭터는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이라 할 만 합니다. 주인공 조나선은 대부분의 루저물 주인공처럼 구제불능으로 보이고, 집안 사정도 좋지 못한데요. 하지만 스스로는 노력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의지가 남아있는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작품이 진행되면서 나름대로 성장(혹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의지에 불을 붙이고 활력을 심어준 게 살인에 노예 무역, 마약 등 최악의 범죄를 골라 저지르는 희대의 인간 쓰레기 집단이라는 점이지요. 한 발만 삐끗해도 모든 게 무너질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줄타기를 하는 조나선의 캐릭터성은 개성적이고 매력적입니다.
히로인인 리자도 매력적입니다. 공권력에 붙잡히면 최소 종신형인 극악무도한 빌런이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고, 그 회의감이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악덕 직장 상사 때문인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으면서 줄타기를 하는 모습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용 대상으로만 여겼던 조나선과의 관계가 진전되며 그를 복잡미묘하게 바라보는 모습도 좋지요. 그러면서도 '일'을 해야 할 땐 고문, 살인, 시체 훼손 등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이기도 합니다.
그 외의 조연들도 제 몫을 다합니다. 주인공을 학대한 가족들, 다른 악당들, 적대자인 요원들, 기타 일회용 캐릭터들까지 꽤 인상깊은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연출
본작 연출은 눈 돌아가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몇몇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만큼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애니가 시트콤 장르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작품 분위기에 맞는 수준으로 피가 튀고, 종종 지나친 섹드립을 보여주지만 작품에 근본적으로 큰 해를 끼치진 않습니다. 그림체도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고, 작붕도 특별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액션은 심플하지만, 대부분 효과적입니다. 특히 리자가 무자비한 살인 행각을 벌일 때가 그렇지요.
총평
캡틴 폴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손에 꼽을 만큼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가장 큰 단점은, 이 작품이 시즌 1에서 캔슬을 먹었다는 겁니다. 해외 보도에 따르면 본작은 본래 20화 1시즌으로 방영하기로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10화씩 분할하여 2시즌으로 방영키로 하였고, 1시즌 시청률이 안 좋다는 이유로 1시즌에서 캔슬 당했다는 겁니다. 즉 20회까지 방영되어야 하나의 시즌이 완결되는데, 그 절반이 잘려나간 겁니다. 법적, 계약적 문제는 없겠지만, 본작 제작진과 본작을 재미있게 보고 시즌 2를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심히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니 지금으로선 이 작품을 추천 할 수 없겠습니다. 지금 방영된 분량만 보면 정말 아무것도 해결 된 게 없거든요. 앞으로도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고요. 그야말로 넷플릭스가 망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요?
평점 ★★ (단, 조기종결로 평점을 50% 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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