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전용 상영 영화를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건 그야말로 복불복입니다. 넷플릭스 상영 전부터 명작이라는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실제로 명작인 영화도 있고, 명작은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는 많습니다. 하지만 월정액제로 보는데도, 돈과 시간이 아까운 영화도 적지 않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저는 이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 이라는 영화는 정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았습니다. 넷플릭스 들어가니 신작 영화라 뜨고, 제시카 알바가 주연이라고 하고 제가 좋아하는 칼질 액션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보게 되었는데요.
줄거리는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미국 전투 요원 '파커'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이후 아버지의 사망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음모가 있다는 걸 감지하고, 조사한 끝에 지역의 권력자인 국회의원과 그 아들인 보안관, 범죄자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결국 파커는 총칼을 들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서는데.....
스토리
이런 장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뻔한 줄거리입니다. 뻔한 줄거리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각본을 잘 연마하거나 재미있게 연출하지 않으면 식상해지기 쉬운데요. 안타깝게도 이 영화 각본은 썩 잘 연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알겠습니다만 대단히 뻔하고, 탄탄하거나 재미있지 않습니다. 또 세부적인 전개가 대단히 멍청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요.
여기에다 쓸데없이 적대 세력을 두 갈래로 나누어 헝클어 버림으로써, 각본이 더욱 힘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인인데요. 주인공, 적대세력1, 적대세력2가 물고 물리는 관계를 잘 설정하여 풀어냈으면 뻔한 줄거리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겠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쓸데없이 적대 세력을 분리해서 꼬아두는 통에 복수극이라는 주제조차 희석시키면서 더욱 나쁜 스토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연출
좋지 않습니다. 이런 액션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액션 연출인데요. 별로입니다. 영화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봤을 땐 제시카 알바가 멋진 칼 액션으로 적들을 다 쓸어버리는 걸 상상했는데요. 제시카 알바의 액션 연기 자체는 평균은 됩나다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특히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기대했던 칼 들고 적과 치열하게 합을 나누면서 멋진 싸움을 보여주거나, 칼 들고 총 든 적들 쓸어버리는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쾌감 하나는 확실히 채워주는 액션은 거의 안 나옵니다.
복수물 액션 영화로서의 연출도 좋지 않습니다. 복수하는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복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당위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의 연출이 상당히 나쁩니다. 통쾌하게 다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통쾌하진 않더라도 무언가 뚜렷한 결과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닙니다. 작중 주인공이 원수 중 한 명을 '처리'하는 장면을 생략해 버리는 게 이 영화가 얼마나 연출의 취사선택을 잘못 하였는 지 보여주는 좋은 예인데요. 이런 영화에서 톡식 어벤져처럼 주인공이 악당 내장을 꺼내거나 산 채로 삶아버리는 걸 기대하진 않습니다만, 원수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을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데 과감히 생략하고, 영화 결말에 뉴스로 암시하듯 처리해버리는 건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캐릭터
스토리, 연출보다 캐릭터가 더 나쁩니다. 차라리 나은 편에 속하는 게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주인공 파커인데요. 일단 비주얼이 좋고, 연기도 보통은 되며 '롱 키스 굿나잇' 처럼 일당백 여전사가 아니라 적당히 현실적인 수준으로 강한 여전사로 나오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예쁘고 싸움 좀 잘한다' 이상의 매력포인트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긴 어렵습니다.
진짜 문제는 악당들입니다. 정말 끔찍하게 멍청한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합니다.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들 하는데, 멍청하고 부지런한 악당도 최악입니다. 이들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불법적으로 탐욕을 채우려면 치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법칙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멍청한 전개는 멍청한 악당들 때문인데요. 아버지가 재선을 노리는 국회의원인데 그 선거 자금을 벌기 위해 미군에서 훔친 중화기를 자국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에게 파는 놈. 보스에게 총질하고 도망친 주인공 쫓아 주인공 조력자의 집에 와서 핏자국을 발견하여 지하실까지 내려가놓고 지하실을 한 번 뒤집어보지도 않는 놈. FBI도 못 잡았다는 테러리스트를 아무 대책 없이 자기 집에 불러들였다가 위기에 빠지는 수준의 놈 등 멍청함이 끝도 없습니다 . 악당이 악행을 저지를 수는 있고, 탐욕에 눈이 멀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멍청하면 안 되는 법인데요.
총평
나쁜 영화입니다. 넷플릭스 정액제로 볼 수 있는 영화라면 다소 단점이 많아도 너그러워지기 마련인데, 이건 도저히 너그러워지기가 어렵습니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고, '모든 면에서 답이 없는 최악' 만 간신히 면한 나쁜 영화입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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