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70년 전 만들어 진 신데렐라의 변주, 영화 '더 글래스 슬리퍼'

B급천국 2024. 6. 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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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인류가 아는 유명한 이야기 BEST 10' 안에는 무조건 들어갈, 말이 필요없는 유명한 스토리입니다. 이렇게까지 유명하다 보니, 의외로 신데렐라 영상물을 보면 원작,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동화속 버전 그대로 옮긴 건 찾기 어렵습니다. 진짜 동화 속 이야기만 그대로 옮긴 영상물은 아동용 단편 유튜브 애니 정도에서나 본 것 같고, 그 외에는 전부 다 재창작과 확장을 거쳤습니다. 이 1955년작 영화, '더 글래스 슬리퍼(The Glass Slipper)' 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작 줄거리는 모두가 아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큰 틀은 그대로 따라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 동화 스토리만으로는 1시간 30분 이상 영화는 고사하고,  25분짜리 TV 애니메이션 한 편 만들기도 버겁습니다. TV 애니에서 종종 신데렐라 패러디 에피소드를 만든 걸 보면, OP와 ED 빼면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신데렐라 동화 이야기는 다 하고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패러디나 재창작까지 충분히 넣을 정도니까요. 이 영화에서도 나름대로의 재창작과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스토리

 

 

스토리는 큰 틀에서는 신데렐라의 줄기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다만 '재창작'과 '확장'을 많이 거쳤는데요. 먼저 본작의 배경은 국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라 공작이 다스리는 '공국'입니다. 신데렐라 세계관이 왕국 치고는 지나치게 규모가 작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그런 분위기에 맞춰 좀 더 현실적 배경을 부가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세계관을 전체적으로 좀 더 현실적으로 다듬었고, 스토리도 좀 더 현실적입니다. 

 

스토리의 질은 괜찮습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바꿨다고 하여, 신데렐라가 가진 꿈과 판타지를 내다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후술하겠지만 본작은 동화에 비해 캐릭터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는데, 그 바뀐 캐릭터를 원작 스토리대로 끌고 가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또 대사의 질도 상당히 높은데요. 본작의 주제를 함축하는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등 좋은 대사가 많이 나옵니다. 다만 원작을 적당히 현실적으로 변주하는 과정에서, 결말부의 카타르시스가 줄어든 건 아쉽습니다.

 

 

캐릭터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높이 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먼저 이 영화의 신데렐라는 '재를 뒤집어 썼지만 계모와 의붓언니를 제외한 모두에게 사랑받는 절세미녀'가 아닙니다. 몇 년이나 계모 일가에게 푸대접당한 탓에 성격도 날이 서 있고, 대인관계도 좋지 못하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고 신데렐라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욕을 하거나 예의없이 행동합니다. 본인이 아는 한, 신데렐라가 마을 사람들과 싸우면서 돼지라고 욕하거나, '내가 출세하면 날 괴롭히던 놈들에게 모조리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 같은 소리를 하는 영화는 이것 뿐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신데렐라를 '배척받는 사람이 타인을 대할 때 날이 서고, 그래서 더 배척받고, 더 날이 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라며 아주 효율적으로 설명하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이처럼 신데렐라의 캐릭터를 기존과는 다르게 설정한 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신데렐라를 치유시켜 주는가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공자(공작아들, 타 신데렐라의 왕자)도 어릴 적 신데렐라의 슬픔과 고통을 보고 처음 그러한 감정을 알게 되어 신데렐라에게 반했고, 이후 신데렐라를 치유시켜 줍니다. 마녀도 대놓고 '비비디바비디부'를 외는 대신 신데렐라에게 보다 인간적이고 어른스러운 조언을 해 주면서 신데렐라를 치유시켜주고, 그를 바탕으로 신데렐라를 성장시켜 주는데요. 이러한 캐릭터 관계가 상당히 효율적이고 수준 높게 짜여져 있습니다. 덕분에 신데렐라가 모두에게 미움받는 소녀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요. 또한, 신데렐라와 공자는 물론, 마녀와 기타 조연들까지 제 몫을 다해냅니다.

 

 

연출 

 

 

신데렐라 역할을 맡은 배우 레슬리 카론이 발레리나 출신이었다던데, 그래서인지 발레 연출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저는 발레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 발레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긴 어렵지만, 일단 눈은 즐겁습니다. 다만 발레가 너무 길게 묘사되는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발레가 지루하거나 쓸데없다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발레가 등장하는 두 장면 모두 신데렐라의 꿈과 환상, 그리고 좌절과 절망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거든요. 첫 번째 발레 장면은 아름답고 톡톡 튀며, 두 번째 발레 장면은 그 어떤 신데렐라 영상물보다도, 임팩트 있게 신데렐라의 좌절을 잘 보여줍니다.

 

발레를 제외한 연출은 평이합니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습니다. 

 

 

총평

 

70년 전에 나왔음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신데렐라의 변주라고 할 만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새로은 신데렐라의 캐릭터를 제시하고 훌륭히 완성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성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만 하겠네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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