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잘 만들어진 19세기 고전의 변주, 영화 '스크루지'

B급천국 2024. 6. 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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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영화 '스크루지(Scrooged)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 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작품인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에 현대 도시 풍경이 박혀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원작 그대로 만드는 대신 현대 버전으로 변주를 하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보니 문자 그대로 '원작 그대로' 만드는 게 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유명한 원작을 변주하는 것이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정도로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큰 도전인데요.

 

줄거리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과는 좀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현대 사회에 찰스 디킨스이 쓴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소설이 없는 척 하진 않습니다. 도입부부터 '찰스 디킨스 원작 크리스마스 캐럴을 TV에서 만나보세요' 라는 장면이 나오니까요.  본작의 주인공 '프랭크 크로스'는 유능하지만 냉혹하고 무자비한 방송사 임원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시청률 전쟁에 돌입한 때 프랭크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직원을 해고하기도 하고, 방송사 위에서는 압박하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며, 사랑보다는 일을 선택하는 바람에 헤어진 옛 연인 클레어와 만나기도 하고, 동생과의 관계도 막장입니다. 그렇게 성공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무자비하게 살아가던 프랭크는 스크루지가 그랬듯, 자신을 찾아 온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과 만나게 되는데.....

 

 

스토리

 

 

스토리는 꽤 괜찮습니다. 원작을 크게 바꾸진 않았지만 적절히 바꾸거나 뒤틀 부분은 뒤틀고, 원작에 충실할 부분은 충실하게 남겨두면서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스토리의 큰 틀은 원작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다만 원작의 스크루지 포지션인 주인공 프랭크의 현실의 삶을 좀 더 많이, 밀도있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랭크의 선택에 따라 주변 인물들의 삶이 좋아질 수도 있지만, 살던 대로 막 살면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도 세심하게 묘사하였지요. 덕분에 원작 스토리를 다 알고 봐도, 몰입도를 잃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습니다.

 

마냥 현실성만 강조한 것도 아닙니다. 원작 특유의 판타지 스토리도 잘 묘사하였고, 효과적으로 변주하였는데요. 특히 후반 전개는 현실 기반 판타지를 넘어,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즉시 경비원에 의해 방송사에서 쫓겨날 짓만 골라서 하는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당장 체포 후 감옥으로 끌려가 10년 안에는 가석방도 기대하기 어려운 짓을 저지른 캐릭터들까지 함께 모여 하하호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대놓고 현실성을 무시하였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데요. 하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개연성 없다' 라는 혹평을 하기에 앞서 판타지로서의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함으로서, 개연성 어쩌고 하는 생각도 잊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위대한 원작 덕도 많이 보았겠지만, 이를 잘 각색한 이 영화 각본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점이라면, 주인공이 과거, 현재, 미래의 여행을 할 때 '과거'와 '현재' 파트가 다소 지루하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과 히로인의 로맨스 묘사가 다소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캐릭터

 

 

빌 머레이가 연기한 주인공 프랭크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빌 머레이 커리어 최고 수준의 연기와 존재감을 뽐내며, 원작의 스크루지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성에, 이 영화 주인공 프랭크만의 개성도 더해져 대단히 인상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찰스 디킨스 원작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요.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들도 괜찮습니다. 주인공에 비빌 만한 캐릭터는 없지만, 조역으로서 자신의 포지션에서 자신의 역할을 모두 충실히 수행합니다. 특히 단순히 자기 역할만 충실한 걸 넘어, 주인공과 조연들이 서로 잘 연계되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주제와 스토리의 완성도까지 높여준다는 점에서 높이 칠 만 합니다. 주인공이 계속 비정하게 행동한 세계관에서는 그 때문에 주변 인물들까지 냉혹해지거나 불행해지고, 반대로 착해진 세계관에서는 주변 인물들도 행복해지는 캐릭터의 변화 묘사도 괜찮습니다. 스토리가 약한 캐릭터는 있어도, 캐릭터성이 부족한 캐릭터는 거의 없습니다.

 

 

연출

 

 

연출도 좋습니다. 현실, 판타지, 현실이 가미된 판타지까지 모두 평균 이상입니다. 연출 최고점으로 꼽는 건 주인공이 이대로 살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보여주는 '미래의 유령과의 여행' 장면인데요. 스토리도 잘 구성하였거니와 프랭크와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불행해지거나 파멸하는 끔찍한 미래를 잘 연출했습니다. 덕분에 이후 펼쳐지는 판타지 듬뿍 가미된 결말까지의 진행이 더욱 감동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요. 그 외에도 전반적으로 연출이 준수합니다. 기쁨, 슬픔, 감동 등 관객에게 각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잘 알고, 효과적으로 사용했지요.

 

 

총평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중에서는 물론, 찰스 디킨스 원작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는 영화입니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장점이 단점을 압도하는 훌륭한 재창작의 사례이자 좋은 명절 영화입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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