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포도가 빚어낸 좀비 지옥, 영화 '죽음의 포도'

B급천국 2024. 6. 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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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영화 '죽음의 포도(The Grapes of Death)'는 프랑스산 좀비 영화입니다. 와인의 나라 답게 '감염된 포도'를 매개체로 한 좀비 감염 사태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자의 분투를 다룬 영화인데요. 현재 유행하는 좀비물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차이 나지만, 개성적이고 뚜렷한 성취를 거둔 작품이라는 점에서 좀비 영화를 논할 때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인데요.

 

줄거리는 도시에서 살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포도원에서 일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시골로 내려가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문제의 포도원에서 사용하던 농약의 영향으로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포도원 주변은 물론 엘리자베스가 탄 기차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좀비가 된 승객에게서 간신히 도망친 엘리자베스는 시골 마을로 대피하지만, 이미 그녀가 간 시골 마을도 좀비 천국이 되어 있는데....

 

 

스토리

 

 

스토리는 썩 좋지 않습니다. 사실 스토리라 할 만한 게 많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좀비 사태 속에 던져놓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걸 그냥 쭈욱 보여주는 수준입니다. 좀비 사태 속에서 풍성한 인간 드라마가 펼쳐지고, 풍성한 스토리가 진행되는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나 월드워 Z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뼈대만 갖춰놓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뼈대도 '포도에 친 살충제 때문에 좀비 사태가 벌어졌다' 수준이니 당시 기준으로도 좋다고 하긴 어렵겠지요. 사실 본작의 최대 단점이 스토리입니다. 

 

괜찮은 부분을 꼽자면 좀비를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라, '감염자' 라는 설정으로 묘사했고, 그 묘사가 괜찮다는 겁니다. 특히 감염이라는 특성상 개인차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 부분이 영화 전개에서 꽤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감염자가 모두 사람 뜯어먹는 괴물이 아니라, 이성을 상실한 괴물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한 채 가학적인 새디스트 살인마가 되기도 한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크로스드'나 '곡비' 같은 작품의 선배랄까요?

 

 

캐릭터

 

 

캐릭터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캐릭터가 인상깊은데요. 지금 이런 캐릭터가 좀비물 주인공으로 나오면 '역대급 발암 주인공' 으로 불렸을 겁니다. 그만큼 엘리자베스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사태를 해결하기는 커녕 악화시키는 데 단단히 일조하며, 특히 결말부에서 그녀의 행동은 여러 의미로 압권입니다. 이 캐릭터가 워킹 데드 주인공이었다면, 미드에 관심있는 모든 커뮤니티를 터뜨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못 만든 캐릭터는 결코 아닙니다. 관객은 알지만 캐릭터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좀비 사태가 벌어져 세상이 지옥이 되고, 감염된 좀비들이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난장판 속에서 평범한 소시민 여성이 멘붕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상당히 잘 연출하였습니다. 주도적으로 좀비 사태를 해결하는 유능한 주인공이 아니라, 좀비 사태에 휘둘리면서 점점 파멸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당히 잘 표현하였습니다. 캐릭터 설정, 배우의 연기, 영화 속 표현까지 모두 좋습니다. 엔딩은 화룡점정이지요.

 

그 외의 캐릭터도 제 몫은 합니다. 앞서 말 한 대로 감염자 좀비라는 설정 하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 생존자들도 비중은 적지만 제 역할은 다합니다.

 

 

연출

 

 

상당히 뛰어납니다. 캐릭터와 더불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감 있게 끌고가는 또 하나의 이유인데요. 평화로운 시골 마을부터 주인공 관점에서 좀비 사태의 시작인 기차, 이후 외딴 집부터 시골, 벌판 등 다양한 배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과 사건들을 짜임새 있게 잘 묘사하였습니다.

 

특히 좀비 사태가 벌어진 이후 펼쳐지는 각종 지옥도의 묘사가 대단히 탁월한데요. 인해전술과 화려한 영상미, 편집으로 좀비 사태 지옥도를 효과적으로 묘사한 '새벽의 저주' 만큼 강렬합니다. 주민이 100명이나 살까 싶은 시골 마을 배경에서 달리지 않는 좀비가 어슬렁거리고 주인공 혼자 좌충우돌 하는 영화에서 이렇게까지 실감나는 지옥도 묘사를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운데요. 기본적으로 촬영 자체가 뛰어나고, 어떤 걸 카메라에 담고 또 강조해 묘사해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는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발휘한 결과물이 아닐까요. 꽤 볼만한 고어 씬은 덤입니다.

 

 

총평

 

좋은 영화입니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빈약하지만, 좀비 영화 사상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의미에서) 발암 주인공 캐릭터와 뛰어난 연출이 시종일관 영화에 몰입시켜 주며, 엔딩도 대단히 강렬합니다. 좀비 영화의 역사에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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