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최초의 H. P.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 '유령 출몰지'

B급천국 2024. 6. 3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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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영화 유령 출몰지(The Haunted Palace)는 장르 불문 서브컬쳐에 끼친 영향이 막대한 작가, H. P. 러브크래프트 원작을 영화화 한 첫 번째 작품으로 특히 유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러브크래프트보다 에드가 앨런 포가 더 잘 먹히는 이름이었기에, 앨런 포의 이름을 중점적으로 팔았지만 실제로는 러브크래프트 원작에 더 가까운 작품이지요. 저야 러브크래프트 작품(크툴루 신화)는 위키로만 주로 접했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초의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훗날 B급 영화로 돈벌기 최고 전문가가 되는 로저 코먼이 '괜찮은 영화 감독이던 시절' 감독한 영화라는 점. 또 대배우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이라는 점 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요.

 

줄거리는 근세 미국의 한 마을에서, 조셉 커웬이라는 남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 사냥을 당해서 화형을 당하면서 시작됩니다. 단, 억울한 사망은 아니었고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을 읽고 사악한 존재를 소환하려다 제지된 것이었지요.(마을 사람들은 자세한 사정은 몰랐습니다만) 그로부터 약 100여년 후, 조셉의 후손인 찰스라는 남자가 부인과 함께 마을에 나타납니다. 100여년 전 화형당한 조셉의 먼 후손으로서, 조셉의 재산을 뒤늦게 상속받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악명높은 흑마법사 조셉의 후손이 나타나며 마을 분위기가 기묘해집니다. 또 찰스는 찰스대로 자신의 조상의 영혼에게 빙의당해 다시 한 번 네크로노미콘을 읽고, 산제물을 바쳐 사악한 존재를 소환하려 하는데......

 

 

스토리

 

 

스토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일단 스토리는 이 장르에서 종종 나오는 '이성과 미신이 충돌하는데 알고 보니 미신이 옳았다!' 류의 이야기인데요. 시작부터 이 세계관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이 있다는 걸 깔고 가기 때문에, 크게 미스터리한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스토리를 못 만든 건 아닌데요. 시작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은 기본적으로 잘 갖추었고 또한 스토리적으로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를 잘 살렸습니다. 이성을 주장하는 자, 미신을 주장하는 자, 절대악 등의 충돌을 잘 묘사하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하면서 끝까지 끌고 갑니다.

 

 

캐릭터

 

 

캐릭터는 좋습니다. 먼저 대배우 빈센트 프라이스가 흑마법사 조셉과 그 후손인 찰스, 1인 2역을 맡았는데요. 믿고 보는 빈센트 프라이스 답게 절대악 흑마법사, 그 후손인 선량한 찰스 역할 모두를 잘 소화합니다. 조셉에게 빙의당해 몸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연기도 괜찮고, 캐릭터성 자체도 나쁘지 않습니다. 찰스의 부인 앤도 '주인공의 선량한 부인이자 산제물이 될 위기에 처하는 붙잡힌 히로인' 역할 정도에 머무르긴 하지만, 그 역할을 잘 수행합니다. 조셉 혹은 찰스 주변을 맴도는 악당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조연도 흥미로운데요. 특히 배경이 되는 마을 사람들은 백여년 전 한 남자를 마녀사냥해 화형에 처한 인간들의 후손이며, 당시 기준으로 봐도 꽤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 세계관 답게 그들이 옳았지요. 이처럼 '광신자들 처럼 보이지만 옳았던 자들'의 묘사가 괜찮습니다. 또한, 거의 유일하게 의사이자 이성과 과학을 강조하는 '윌렛' 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런 장르에서 이런 캐릭터가 너무 꽉 막혀 이성과 과학만 강조하는 멍청이로 나오는 것과 달리 작중 가장 이성적이고 똑똑한 캐릭터를 잘 소화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사실 월렛이라는 캐릭터가 작중에서 잘못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과학과 이성이 미신을 점점 몰아내는 시대였고, 그래서 과학과 이성을 강조했으며, 세상이 자기 생각과는 달리 좀 미쳐돌아간다는 걸 깨닫고는 사태 해결에 나서기까지 하죠. 조셉이나 찰스와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연출

 

 

이 시기 나온 로저 코먼 표 시대극 호러 영화 평균 수준의 연출과 화면을 보여줍니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인상깊거나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분위기 메이킹이나 비주얼, 기타 연출 등에 있어서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며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기는 했지만 보통이나 보통보다 조금 나은 수준 이상이라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로저 코먼 표 시대극 호러 중 연출의 끝을 보여 준 '붉은 죽음의 가면' 같은 작품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굳이 흠잡을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총평

 

평작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영화라고 평가합니다. 스토리나 연출은 나쁘진 않으나 이 장르 기준으로는 평범하며, 캐릭터는 꽤 잘 짜여졌습니다. 또한, 여러모로 의미가 큰 영화이기도 하지요. 최초의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 로저 코먼이 좋은 영화감독이던 시절의 영화, 또 하나의 빈센트 프라이스 영화..... 종합하면 이러한 장르를 좋아한다면 한 번은 볼 만한 영화라 하겠습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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