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천국의 영화 리뷰

슬래셔 영화의 고전이자 수작, 영화 '블랙 크리스마스'

B급천국 2024. 6. 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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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크리스마스(Black Christmas)는 호러 영화의 역사, 특히 슬래셔 영화의 역사에서 꽤 중요한 작품입니다. 1974년에 나왔으니 슬래셔 장르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할로윈' 보다도 4년 이르지요. 그만큼 초창기 슬래셔 무비로서 그 존재감과 영향력이 꽤 크다고 평가받습니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할을 연기한 것으로 유명한 올리비아 핫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인데요.

 

줄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여대생 기숙사에 정체불명의 장난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됩니다. 기분나쁜 장난전화가 이어지는 듯 싶더니 (처음에는 관객들만 아는) 살인자가 등장하여 여학생을 살해하기 시작하지요. 그 와중에 장난 전화는 이어지고, 마침내 여학생들도 이것이 단순한 장난전화 및 우연한 실종이 아니라, 살인자가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스토리

 

 

슬래셔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명료하거나, 혹은 스토리가 좀 복잡해도 사건 진상은 잘 보여줘야 높이 평가받는 일이 많습니다. 전자의 대표주자는 13일의 금요일 4편이나 6편, 후자의 대표주자는 스크림 1편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데 이 블랙 크리스마스는 이러한 슬래셔 장르의 왕도를 꽤 많이 벗어났습니다. 일단 스토리가 다소 두루뭉술하고, 엔딩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건 진상도 뚜렷하지 않고, 살인마의 정체도 살짝 드러난 외모와 작중 행적 등을 통해 관객이 추리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 엔딩에서도 살인마, 그리고 주인공의 운명도 뚜렷하지 않지요.

 

웬만하면 이런 식으로 슬래셔 영화를 만들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겠습니다만, 놀랍게도 블랙 크리스마스의 스토리는 괜찮습니다. 뭔가 두루뭉술하고 불분명한 스토리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의문을 품게 만드는 힘이 있고, 그만큼 여운도 강하게 남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예로 캔디맨 1편을 들 수 있을 듯 하네요. 이는 철저히 감독의 의도 하에 만들어 진 스토리텔링이었다고 하며,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된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캐릭터

 

 

대부분의 호러 영화에서 그렇고, 특히 슬래셔 장르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의의 중 하나가 '눈요기' 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눈요기 여성 캐릭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장르에서는 그렇게 쓰이는 건 엄연한 팩트인데요. 그런데 블랙 크리스마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그 올리비아 핫세를 캐스팅했음에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인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아름답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모에 불과할 뿐, 그 시절 여대생이 가질 만한 고민과 행동거지를 하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다른 여성 캐릭터도 눈요기나 섹스 어필을 하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말 그대로 '인간' 으로서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데요.

 

슬래셔 장르, 나아가 20세기 호러 영화에서 이런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 묘사가 흔치 않다 보니 상당히 신선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여집니다. 여성을 잘 묘사하려면 남성을 깔아뭉개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창작물과는 달리, 여성을 생동감있게 잘 묘사하면서 딱히 남성을 깔아뭉개거나 폄하하는 묘사 등도 없이 말 그대로 여성 캐릭터 세계, 그리고 그 속에 난입한 살인마를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상당히 높은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슬래셔의 꽃인 살인마 캐릭터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앞서 말 했듯 이 영화의 살인마는 동기도, 정체도 불분명하며 심지어 제대로 모습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순간포착을 해도 제대로 모습을 보여 준 장면이 없다시피 할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부분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야 하며, 그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또 여운을 남기는 효과도 있습니다. 살인마 캐릭터에도 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이러한 모든 캐릭터 연출 스타일도, 감독이 철저히 의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의도에 맞게 잘 짜여진 캐릭터 활용의 예라 하겠습니다.

 

 

연출

 

 

누드와 유혈이 낭자한 흔한 슬래셔 영화와는 많이 다른 연출을 보여줍니다. 피도 많이 안 나오고, 불분명한 살인마의 정체에 걸맞게, 살인 연출도 살인마를 가급적 보여주지 않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당시 호러영화 기준으로도 잔인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 듯 한데, 그럼에도 살인 씬의 임팩트는 상당합니다. 꼭 살인 씬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영화 분위기에 맞게 긴장감있게 화면을 뿌려주고, 연출도 잘 해 냈습니다. 스토리나 캐릭터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연출도 나쁘지 않습니다.

 

 

총평

 

좋은 영화입니다. 슬래셔 장르의 공식이 완성되기 전 나온 작품이자, 감독이 대놓고 '호러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면서 만든 작품 중 하나이지요. 스토리도, 캐릭터도, 심지어 연출도 자극적이고 많이 보여주는 게 미덕인 대부분의 호러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상당한 성취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슬래셔 영화, 나아가 호러 영화의 역사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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